진보??? 아니면 환경???

원래는 이렇게 길게 쓸 생각 없었는데 리포트를 쓰다니보 간추리가 귀챤아서 다 올립니다. 이런 쓸모 없는 내용은 빼고 느낀점만 대충 1장정도만 쓰고 싶었는데...ㅡㅜ

기소르망의 "진보와 그의 적들"을 읽고 쓴겁니다. 한번 이책 읽어 보세요,.

1.돌리와 윤리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1997년 양한마리가 태어났다. 생긴 모습은 어타 다른 양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양은 세계사회에 엄청난 어파를 몰고 왔다. 엄마와 아빠가 없이 태어난 돌리라는 작은 양의 탄생으로 세계는 인간 복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나라에서 그것의 위험성을 표현했으며 몇몇 나라는 아예 법으로 복제를 막았다. 돌리를 탄생시킨 로슬린 연구소는 지금도 환경론자들에게 습격과 공격을 받는다. 대체 돌리의 어떤 면이 그렇게 윤리적으로 비 적합한 것일까?

돌리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지탄과 찬양을 동시에 받는 이유는 아마 그것이 인간복제의 첫걸음을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돌리가 문제이기보다는 인간의 복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탄을 받는 다 해도 결국은 인간복제도 가능할 날이 올 것이다. 인간복제를 법으로 막기 위해서는 어떠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 터인데, 복제된 인간이 다른 사람과 달리 폭력적일까? 아니면 왕따를 더 당할까? 부모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 빼고는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온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인간복제에 가장 크게 반대하는 세력 중에는 종교단체가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비종교적인 성향이 강하고, 역사적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보나 종교의 완벽성은 무너졌으므로 종교가 시끄럽게 떠들 수는 있지만 간섭은 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복제가 인간을 도구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도 잘 생각해보면 이유가 되지 않는다. 만약 불임인 부부가 인간복제를 통해 아기를 가지고 싶어서 인간복제를 했다면 과연 이렇게 탄생한 아기가 인간의 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 많은 사람들은 생명공학이 인간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광우병 같은 전염병의 위기를 생명공학을 통해 벗어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2. 위험한 신중함

사람들은 가끔 기술에 대해 너무 신중해 질 때가 있다. 새로운 기술이 발견되면 그 기술이 무해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그 기술을 위험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생명공학이나, 유전자조작식품 같은 것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신중함 때문에 많은 곳에서 커다란 혼란을 야기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예를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예전에 많이 쓰였던 DDT를 예로 들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환경론자들이 펴낸 잡지에 DDT의 영향으로 대머리독수리가 사라져 간다고 기술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소량으로 사용되는 정도라면 자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DDT가 암을 유발한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DDT사용을 영구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내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말라리아가 발생하는 나라들도 DDT사용을 중지하기 시작했다. 짐바브웨에서는 서방측의 요구로 1995년 DDT의 사용을 금지했고, DDT의 대체제인 델타메트린으로 살충제를 바꾸었다. 물론 환경론자들이 말한 환경에 덜 유해하다고 알려진 이것은 DDT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라는 게 들어났다. 결국 짐바브웨의 지도자는 수많은 피해를 내고 1999년 DDT사용을 다시 허가했다. DDT를 사용금지한 4년 동안 말라리아 환자 수는 5000명에서 120000명으로 증가했다. 환경론자들은 대머리독수리 몇 마리를 위해 몇 만 명의 인간의 생명을 포기한 셈이 된 것이다.

책에 나온 예를 한 가지 더 써보면 2001년 초 갈라파고스 섬에 유조선 침몰사태를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당시 갈라파고스 섬에 유조선이 침몰하여 그 안에 있던 기름에 갈라파고스 섬에 희귀 새들과 이구아나가 시꺼먼 기름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환경론자들이 그 새들을 하얀 천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음.... 대단한 사람들이야....” 라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기름을 분해할 수백만 마리의 세균들을 밟아 죽였고, 기름을 청소한답시고 분해도 되지 않는 세제로 바위들을 박박 문질러 버렸다. 아마 놔두었으면 훨씬 금방 자연적으로 복구 되었을 것이다. 91년 걸프전으로 엉망이 된 페르시아 만이 지금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것처럼 쓸모없는 신중함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런 쓸모없는 신중함은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계속되는 것일 것이다. 대체 누가 이득을 누릴까? 그건 소비자도, 환경론자도, 자연도 아니다. 실제로 이런 신중함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정부나 행정기관일 뿐이라 는걸 알아야 한다. 신중함 이전에 DDT없는 세상보다, 있는 세상이 훨씬 좋지 않을까?

3. GMO[유전자 조작 식품]는 과연 위험한가?

또 이 책에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의견을 쓰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찝찝했지만 나중에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 아니라고 믿는 식품들도 천천히 뜯어보면 수세기에 걸친 도태과정 속에 교배로 얻어진 결과물이다. 만약 이것을 키우는 사람들이 농산물에 거름, 비료, 제초제, 해충제등을 꾸준히 뿌려주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지구상에 남아있는 농산물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교배를 반대하는 환경론자나, 생물학자를 본적이 있나?? 이런 교배 방법도 분명 부작용이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종의 조작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옥수수Bt라는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있다. 이 옥수수는 옥수수명충나방이라는 유충을 박멸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한다. 나방이 되기 전에 유충은 나무줄기를 파고들어 옥수수 새싹에서 양분을 취한다. 그러 다음 땅속으로 들어가 이듬해 여름까지 동면을 하고 한다. 이 유충 때문에 어떤 지방은 옥수수 생산량의 1/4까지 피해를 봐서 개발도상국에서는 상당량의 살충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살충제를 사용하면 지하수 오염문제도 있고, 많은 양을 사용한다고 해도, 완전히 죽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완전 박멸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리고 살충제 살포는 돈도 많이 들뿐 아니라 필수적으로 오염을 야기한다. 게다가 개발도상국 농민들은 기술적인 면도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유충의 피해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약간의 수확량에도 생존이 결정되는 이들 농민들에게는 옥수수Bt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옥수수Bt에 위험성에 대해 따지겠지만, 가축이나 사람이 이 유전자 이식 옥수수를 먹는다고 해도 아무런 위험성은 없다. 보편적으로 자연에서나 일반 살충제에 의존하는 이 Bt유전자는 인체에 대해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이걸 먹는다 해도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화조직을 더 강화시킬수 있을 것이다. 몰론 이 옥수수Bt는 옥수수 자체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옥수수를 유전자 조작했더라도 이 옥수수Bt는 여전히 옥수수이니까... 2006년 애틀랜타의 병균검역센터는 유전자 이식 농산물이 그 자체로는 알레르기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즉 유전자 이식 농산물은 안전하단 말이다.


4. 멜서스 이론
세계의 경제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 중에는 멜서스 라는 사람이 있다. 멜서스가 출간한 1798년 출간한 “인구론”에는 식량은 산술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절대다수의 기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틀린 것이었다. 그는 기술의 발전이 불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6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세계 전체의 쌀 생산량은 실제로 두 배나 늘었다. 덕분에 10억 명의 인구를 더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녹색혁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녹색혁명은 수천 번의 실험을 거쳐 앞에서 말한 시간의 도태과정을 빠르게 한 것뿐이다. 이런 방식의 실험은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발전에도 분명한계를 가지고 있다. 날마다 부양해야할 인구수가 수없이 늘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아시아의 경우 20년 후에 인구가 10억 명 이상 증가할 것이다. 지금의 방식으로 “녹색혁명”을 계속한다면 이 목표치를 달성 할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녹색혁명”을 이룰 때가 온 거다. GMO는 그에 대한 훌륭한 답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멜서스의 주장을 실제로 지구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결론

환경론자들은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앞날을 막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주장들이 일부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껏 인류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지금의 문명을 이루었다. 덕분에 지금껏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자.
“당신 앞으로 지구의 환경을 위해 자동차 타지 말고, 전기도 쓰지 말고, 아... 앞으로는 고기도 먹으면 안 돼. 알았지?”
그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얼마 전에 지율이라는 위대한 스님께서 도롱뇽을 위해 직접 단식투쟁을 하셨다. 덕분에 KTX가 지나가야할 터널공사가 중지되었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하겠다는 말을 듣고야 그 위대하신 스님은 단식투쟁을 풀었다. 덕분에 우리 한국은 대충 듣기로 1조 2천억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아마 그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K-1A1탱크가 한 대에 약 40억 정도 한다. 1조 2천억이면 300대다. 아마 지금 배치되어 있는 K-1A1탱크가 300대가 안 될 거다. 그리고 1조 2000억이면 돈 많은 일본도 4척밖에 가지지 못한 이지스 구축함을 2척 반이나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이거 3척만 있으면 일본도 독도주위에서 어슬렁거리기 쉽지 않을 거다. 물론 지율스님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다. KTX 때문에 도롱뇽이 그 산에서 없어질 수도 있고, 생태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1조 2천억이라는 국민의 혈세는 누가 책임질 것이며, KTX가 연결도지 못해 발전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환경론자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작은 주장 때문에 더 많은 피해를 누군가가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껏 기술의 발전은 거의 많은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발전해 왔다. 비록 그것이 지구의 환경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환경이 인간의 삶에 피해를 주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그 나은 기술의 발전을 꽤해 그것을 고쳐 나갈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의 환경이 후진국의 환경보다 더 낫지 않은가??

기술의 발전을 막는 사람들은 진보를 막기보다는 그 진보를 어떻게 확산시키고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by 소련의부활 | 2006/04/30 07:26 | 경제학 한마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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